헌책방

3초 이상 본 2009.02.01 23:04 posted by 차완무시
아주, 아주아주아주 오래간만에, 헌책방에 갔다.
입던 옷을 깨끗하게 빨아 천원에 팔고 사고,
세련된 디스플레이는 없지만 무척 사고 싶은 아이템들이 득실거리는 동묘역 벼룩시장에는
헌책방도 있었다.

의외의 다양함과 희귀함에 깜짝 놀라서 즐겁게 몇십분 이책 저책 찝쩍거리다보니
눈이 핑핑 돌기 시작한다. 정리되지 않은 자료들을 보니 현기증이 나고 좀 답답해진거다.
나는 아마 보석이 내 주변에 널려 있어도, 그것들이 색깔별로 가격별로 모양별로 정리되어 있지 않으면 그게 보석인지 돌인지 구분 못 할 꺼다. 그게 참 아쉽다. 가치 있는 것을 찾아내는 번뜩이는 눈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위기다, 이대로라면 얼마지나지 않아 나는 나가겠다고 보채게 될 것이다.

'사려고 맘먹은 책이 있는데 이곳에서 함 구해봐?'

그 장소에 오랫동안 머무르기 위한 동기를 스스로에게 부여한다.
함께 있던 그에게 함께 찾아달라고 요청했다.
아슬아슬 세이브. 난 그곳에 더 머물수 있게 되었다.
근데 고것참. 다른날은 잘도 눈에 띄었을 그것이... 두세군데를 돌아도 좀처럼 찾아지지 않는다. 시리즈중 2번째 권인 그것만 없다. 다른 권들은 왕왕 눈에 띄는데...
야속하게도 같이 갔던 그는 함께 책을 찾아주기는커녕 쓸쩍 오래된 야한 잡지를 집어들어 보고 있다.
쳇. 역시 나의 절박함을 남과 공유하기는 힘든 일이다.

결국 포기했다.
주인 어른에게 찾아 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왜냐면, 헌책방들은 대체로 내가 주인이어도 절대 알 수 없을 자유 분방한 책 배치를 자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에 여기저기에 있는 같은 시리즈 물을 눈에 띄는데로 한곳으로 몰아 두었다.

이런, 책벌레나 먼지가 있었나 보다. 몸이 가렵다. 더 있고 싶었지만 이번엔 어쩔 수 없이 나와야 했다.
입맛을 다시며 사야 할 책을 사러 대형 서점으로 갔다. 검색과 구매가 15분 안에 다 끝났다.
분명 헌책방에도 있었을 것이다. 다만 내가 찾지 못했을 뿐.

헌책방은 무척 불편하다. 자료들이 정리되어 있지 않아 원하는 책을 찾으려면 무척 오랜시간동안 둘러봐야하고, 거기다가 좁은 통로를 지나다니려면 수시로 '실례합니다' 라고 인사를 해야 한다. 앉을 수도 없다.  빠른 매매가 유일무이한 존재의 이유가 아니라서 일 것이다. 효율적인 매매를 위해서라면 갖춰져야할 필수 조건들을 가볍게 무시하고 있지 않은가!
참으로 신기하게도 그다지 가치가 있을꺼라 생각되지 않는 작은 전시의 자료집이나 오래된 잡지, 아무도 안사갈 것 같은 철지난 사회과학 서적들이, 팔릴 것 같은 나름 최신의 책들과 '동일하게'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아~~~ 헌책방은 검색과 구매가 후다닥 이뤄지는 온라인 서점이나 대형 서점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구나 !!!
서점도 역시 (슬프게도!) 시장의 논리가 뻔하게 반영이 되는 공간이다. 특히 대형서점은 적나라하다. 마케팅 능력이 있는 큰 출판사의 책이나, 시장의 수요가 있는 경영처세와 가벼운 소설들이 매대의 중심을 차지하고 너른 면적을 잠식하고 있다. 오래된 책이나, 찾는 이가 많지 않은 책은 전시도 되지 않는다. 매매가 최적으로 일어 날 수 있도록 이런저런 장치들이 곳곳에서 기능하고 있다. 
하지만  헌책방은 다르다.

아직까지도 헌책방이 존재하는 이유?
물론 그 답은 일차적으로 '어째서 책방을 계속 하고 계십니까?' 라고 주인 어른께 물어봐야 정확히 알겠지만,
음, 내 생각엔 아마도 이런 의외의 발견과 신선함에 매료된 이들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헌책방에서는 반값, 아니 반의 반값의 책들이 널려 있다. 그 착한 가격들은 무척이나 신선하다. 10분 정도 안에 아! 이책을 이 값에! 라는 감탄을 수번 하게 된다.  
오래된 책들이 가지는 신선함을 느껴보았는가? 조선왕조실록완역본이 구석에 쪼르륵 쌓여있는 신선한 광경! 그리고 그것을 찾는 멋진 중절모의 노신사! 온몸에 전율이 흐른다.
거기다가 기대하지 않은 의외의 책을 발견할 때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잔잔하다. 아마도 보물찾기에서 보물을 발견하거나 길에서 횡재하는 것과 동급의 기쁨일 것이다.

'헌'책이 모여 있지만 신선함과 의외성이 있는 헌책방.  그래서 난 참 헌책방이 좋다.
이제 좀 있으면 그가 좀 멀리 여행을 가게 되어서 주말에 그와 같이 가긴 힘들겠지만, 나 혼자라도 종종 그곳에 들러, 월척을 낚아야 겠다. 그가 다시 오면, 실컷 자랑하면서, 빌려줘야지, 히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