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 츄리닝 입은 여자]는 미적 감각이라곤 옷 중에 딱 '츄리닝' 정도인 제가, 미술 작품들을 보고 든 느낌을 남눈치 안보고 대담하게 끄적이는 공간입니다. 
'이건 뭐야?' 하시는 분은 이곳을 클릭! 구차하지만 구구절절한 사연이 펼쳐 집니다.  


키스 헤링 Keith haring (1958-1990) -80년대 미국 뉴욕에서 활동한 낙서화 화가 


지난 봄 여의도역에 갔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역 전체 벽에 되어 있던 랩핑광고. 실로 엄청난 시각적 자극이었습니다. 벚꽃사진으로 벽 전체를 도배했었는데, 엄청난 규모에도 압도, 생생한 프린트 상태에 놀람!
광고가 무섭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벽화가 가지는 공공의 효과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순간 퍼뜩 떠오름'에서 그치고 말았죠. 생각을 더 이어가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몇주전에 20세기 라틴아메리카 거장전에 다녀왔어요. 멕시코 혁명 시기 벽화운동을 주도했던 디에고리베라, 오로스코 등 거장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멕시코 사회에 대한 사실적인 때로는 상징적인 묘사들을 보면서 '그들은 왜 벽화 운동을 벌였는가?' 가 궁금해 졌습니다. 벽화가 머금고 있는 대단히 큰 영향력에 관심이 갔습니다.


그리고, 키스 헤링. 지하철역이나 담벼락에 그렸다는 그의 낙서그림 (Graffiti)


사진 : 키스헤링 재단 http://www.haring.com


벽에 그려진 그림이, 그린 목적 그리고 무엇을 그렸냐에 따라 완전하게 다른 느낌을 줄 수 있다는 것에 새삼 놀랐습니다. (그리고 벽화가 가지는 매력에 환호했습니다. )


짝꿍이다 싶은 것을 연결해 보아요~

A 상품을 알리고 기업의 이미지를 높이는 광고. 
B 혁명이라는 목적의 실현도구로서 왠지 크고 무겁고 비장한 느낌의 그림. 
C 넘치는 재치와 유머로 사회의 모습을 표현한 키스헤링의 낙서화. 


1 둥둥 떠다니는 돈다발
2 한사람이 손 끝으로 가리킨 한 방향을 거대한 집단이 한맘한뜻 으로 간절하게 바라보는 모습 
3 놀이 동산을 뛰어다니는 절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어린이들 무리



구체적인 묘사 대상이 없이 선과 면과 색으로 이루어진 그림을 보면, 참으로 난감해 집니다. 대체, 작가는 뭘 말하고 싶은 거야? 해석이 참으로 어렵죠. 현실의 묘사와 대상의 재현을 포기하고 지극히 관념화 된 그림이 과연 그림을 감상하는 이들과 교감할 수 있을까요? 키스헤링도 아마, 이런 질문에서 시작하지 않았을까 예상합니다. 그래서, 관객들과 소통하지도 못하면서 예술가임네 하며 소위 잘난 체하는 사람들에게 보란듯이, 지하철역 왔다갔다하는 사람들 앞에서 '함께' 그림을 그린 것이죠. 


사진 : 키스헤링 재단 http://www.haring.com



키스 헤링은 팝아트 장르의 화가로 분류되죠. 하지만 대표적인 낙서화가인 바스키아와 키스헤링은 조금 다른 느낌입니다. 바스키아의 그림에서 절망과 분憤 섞인 냉소가 느껴 진다면, 키스헤링은 여유롭고 유머러스합니다. 무질서보다는 질서가 느껴지고 즉흥적이라기 보다는 철저하게 디자인된 느낌이 나지요. 그가 인종차별을 주제로 그림을 그려도, 동성애를 묘사하는 그림을 그려도, 전쟁을 반대하는 그림을 그려도 그 작품들이 무겁거나 심각하거나 엄숙하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보는 사람들을 덜 불편하게 하지요. 그 역시 성소수자였고, 에이즈로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지만.... 그래도 그의 그림에는 유머가 넘쳐납니다. 
그래서 무척 마음에 듭니다. 



저 자유자재로 꺾여 있는  관절들을 보세요. 단순화된 인체들이 마치 춤을 추고 있는 것 같지요? 저런 모양의 쿠키가 나오면 완전 귀여워서 절대 먹을 수 없을 것 같아요~!!

키스헤링은 이렇게 귀여운 아이콘을 이용해서 당시 미국사회의 대중문화와 사회의 모습을 표현했습니다. 
기존의 관습에서 벗어난 즐거운 '놀이' 였죠. 당시의 그래피티는 시대의 욕망을 분출하는 일종의 코드로 기능했던 것 같습니다. 70~80년대 뉴욕거리의 낙서란 경제적으로 힘들고, 사회적으로 소외받던 유색인종 아이들이, 질풍노도의 그 시기에! 공공장소의 벽에 스프레이를 뿌리는 일종의 일탈행위였으니까요. 키스헤링은 백인이었고, 십대도 아니었습니다. 쉽게 생각해서, 낙서랑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었죠. 아마도 그는 낙서를, 십대의 아이들처럼, 주체할 수 없는 욕망을 분출시키는 수단이 아니라, 절제된 감정을 표현하여 대중과 소통하는 유용한 수단으로 여긴 것 같아요. 새로운 미술적 표현 수단으로 '미술관 전시'가 아니라 낙서라는 방식을 이용한 것이죠. 분명 미술의 오래된 관습에서 벗어나 새로움을 추구한 의미 있는 시도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그의 작품들이 전세계에 알려지고 머그잔과 티셔츠의 문양으로 쓰이게 된 계기는, 그의 낙서들이 지하철 벽이 아니라 '미술관과 갤러리'로 기어들어가 전시 되었기 때문이죠. 쩝! (물론 키스헤링은 유명해진 후에 틀에 박힌 대중과의 소통방식에서 벗어나고자 '팝 샵 Pop Shop'을 만들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쉽고 재미있게 다가설 수 있는 결코 어렵지않은 '미술관밖 미술'이라고나 할까요?)

혹자는 키스헤링의 아이콘들이 상품화되어 대량으로 거리에서 유통되는 것을 곱지 않는 시선으로 보기도 합니다. 전 오히려 질문하고 싶습니다. 왜 그러면 안되죠? 예술작품은 특정한 장소에서만 대중과 만나야 합니까? 
물론, 작품속 일부 이미지나 아이콘만 차용되 아무런 메세지 없이 배열/배치 되어 있는 상품이 과연 예술 작품인가라는 의문이 들긴 하지만, 그의 그림이 그려진 머그잔을 사용하고 티셔츠를 입으며 거창한 무언가를 기대하는 건 아니잖아요! 뿌우~~


여하튼 저는 그가 어렵지 않게 대중과 소통하려고 했던 그 시도들이 무척 마음에 듭니다. 그리고 그가 가진 여유로움과 유머러스함이 참 부러워요. 
제가 사는 동네의 담벼락에서도 그를 만날 수 있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회색 시멘트가 발라진 삭막한 벽에 키스헤링의 그림같은 유머러스한 낙서화로 가득차 있으면, 그 앞을 걸어다니면서 흐뭇하게 웃을 수 있을 것 같아요. 


- 웨스트 빌리지 Tony Dapolito 레크레이션 센터의 수영장에 그려진 키스 헤링의 벽화 -


(나중에 기회가 되면, 벽화-공공미술에 대해서 좀 공부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