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 츄리닝 입은 여자]는 미적 감각이라곤 옷 중에 딱 '츄리닝' 정도인 제가, 미술 작품들을 보고 든 느낌을 남눈치 안보고 대담하게 끄적이는 공간입니다. 
'이건 뭐야?' 하시는 분은 이곳을 클릭! 구차하지만 구구절절한 사연이 펼쳐 집니다.  

앙리 루소 Henri Rousseau  (1844 ~1910) : 40살이 넘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늦깎이 화가

가난합니다. 찢어지게. 그러나 아이에겐 예술적 감수성이 흘러 넘쳤습니다. 어쩔 수 없이 가슴에 품은 불덩이를 한켠으로 치워 두어야 했습니다. 십수년의 세월을 돌고 돌아 어릴때 접어 두었던 욕망을 펼쳤습니다. 사람들의 냉소와 무관심이 두려웠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끝까지 예술의 길을 지켜냈습니다. 물론, 쭉~ 가난했습니다.


1. 미술가가 되기 위해서는...
미술을 하기 위해서는 돈이 많이 듭니다. 원래 가진돈이 없다면, 배우기도 힘들지만, 용케 배웠다 하더라도 명성을 얻기 전까지는 알바도 뛰고 하면서 가난하게 살아야 합니다. 오늘날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루소가 살던 시대도 역시 그랬습니다. 이름있고 인정받는 화가가 되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여유가 필요했습니다. 쟁쟁한 대가의 사돈의 팔촌이라도 알아야 하고 좋은 미술 학교도 나와야 했지요. 루소는 유명한 화가되기 필수조건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습니다.


자화상. 앙리루소. 1890



2. 주중엔 세관원 주말엔 화가

루소는 가고 싶었던 화가의 길을 애써 외면하고 생계를 위해 세관원이 되었습니다. 내내 그림그리는 것을 동경하다가 40살이 훌쩍 넘어서야 늦깎이로 미술가의 삶을 살게 됩니다. 스승 없이 독학으로 공부했지요. 평일엔 세관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그림은 주말에만! 그래서  ‘일요화가’라고도 불리웠습니다. 미술학교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기본이 안되있는 화가'라는 사람들의 조롱을 견디어야 했습니다. 수없이 좌절했고, 실패했습니다.
전업작가로 살아가게 되면서부터는 살림살이가 궁핍해졌습니다. 빚을 지게 되었고, 돈을 벌기 위해 동네 아이들을 상대로 미술 교습을 해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워낙 이문에 밝은 스타일이 아니라 손에 돈을 쥐여지는 일은 별로 없었다고 합니다. 말년이 되어서는 그의 그림이 그럭저럭 팔리기 시작해, 약간의 수입이 생겼는데, 그것마져 동네사람들에게 음악회와 전시회를 열어주는 용도로 사용했으니... 말 다했죠.
하지만 그는 끝까지 미술가로 살아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3. 한국에서 미술가가 되기 위해서는...
40대 늦깎이 화가로 데뷔한 루소를 보면서, 한국의 미술 교육에 대한 생각에 잠깁니다.
부모의 부와 지위가 자녀에게 되물림되는 이 지독한 부의 '세습'사회에서, 가난한 집 아이의 예술에 대한 열정은 꽃 피우기도 전에 묻혀버리기 쉽습니다.
공교육을 통해서는 아이의 예술적 감각을 독창적으로 키우고, 표현하는 스킬을 배우기 어려운 현실이고,(저저..경쟁적인 교육으로 아이들 힘을 쪽쪽 빼고 있는 꼴을 보십시오. 휴...) 그런 맞춤 교육을 위해서는 사교육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인데 예능교육은 그 비용이 어마어마 하니까요. 부모님들은 아이의 재능을 키워 줄 수 없는 자신의 경제적 무능을 무척 한스러워하며 남몰래 울겠죠.

'그 어떤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꿈이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도전해야 하는 것 아닌가?'는 궤변입니다.
아이들에게 슈퍼맨이 되길 강요하면 안됩니다.
한국사회에서는 사교육-미대진학 외 다른 방법으로 화가가 되는 길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용케 다른 방식으로 화가가 되었더라도, 소위 별볼일(?) 없는 화가라면 먹고사는 문제를 다른 영역에서 해결해야 하지요. 하고 싶은 것을 맘껏 하면서 동시에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기란 쉽지 않다는 걸 알게된 아이들은, 꿈 보다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먹고 사는 것을 선택합니다. 그걸, 비겁하다 하는 건, 지나가던 개미가 웃을 일입니다.


잠자는 집시. 앙리 루소. 1897





4.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술과 '접속'해야 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술을 하고 예술을 즐길 수는 없는 걸까요? 가난한 사람이 예술하는 세상은 정말 요원한 것일까요? 아니, 아니어야 합니다. 아니게 만들어야 합니다.
방법은 크게 두가지 겠네요. 

우선은,
공공 교육 입니다.
공교육에서 아이들에게 맞춤식 교육을 제공하는 겁니다. 미술이나 예능의 영역도 마찬가지로요. 도달하는 과정이 힘들고 어렵더라도, 그래야 합니다. 돈 없어서 꿈을 접는 아이들이 있는 세상은 더욱 어렵고 절망적일 꺼니까요.

 - 프레시안 핀란드 교육탐방 시리즈 기사 中  "부모 잘 만나야 우등생…벗어나려면"

다음은
지역 공공 작업실&미술관입니다.
1) 학위가 없어도 예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직업 예술가들만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작업실이 필요합니다. 누구나 미술을 배우고 제작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2) 예술가들이 작품을 생산하고 대중(지역주민)과 만나는 공간이 턱 없이 부족합니다. 이건 예술가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소통이 되지 않으니 먹고 살 방법이 나올리가 없습니다.
3) 소박한 예술을 할 수 있는 공간, 그리고 전시하여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 그리고 와글와글 감상과 느낌이 소통할 수 있는 매체와 사람들이 지역마다 필요합니다. 공공 도서관 처럼, 공공 작업실 & 미술관이 필요합니다. 전시만 하는 공간으로 머물면 안됩니다. 생산하고 교육하고 전시하고 소통하는 장이어야 합니다.

 - 같은 주장을 하는 블로거가 있네요! 지역의 디테일이 만든 영화, <구구는 고양이다>

루소가 꿈을 끝까지 지킬 수 있게 한 원동력은,
끝없이 살롱과  낙선자모임전[각주:1]에 자신의 그림을 전시하여 대중들과 소통하고자 한 것일 것입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술과 접속하게 되면, 살길은 열리는 거지요. 더 많은 사람들의 지평을 넓혀지고, 마음에 울림을 주고 사람들로 하여금 작품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동네에서 미술작품을 만들고 배우고 감상하고 이야기하는 장이 필요합니다. 그 역할을 동네의 공공 작업장&미술관이 할 수 있을 겁니다.


뱀을 부리는 여인. 앙리 루소. 1907

 



  1. 살롱에서 선택받지 못한 작가들의 모임. 실력이나 소속에 상관없이 누구나 가입할 수 있었으며 직업화가가 아니라도 상관없었다. 루소는 꾸준히 이 낙선전에 자신의 그림을 전시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