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를 알고 싶나? 그렇다면 니체를 보라!
그의 창조적 생산물에 경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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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체 [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0.15 ~ 1900.8.25]

  에피소드 episode

 절망의 나락에서 허우적 거릴때 나타난 한줄기 구원의 불빛!
'선이란 무엇인가?'라는 규정적인 물음이 아닌
'어째서 선이 필요한가?'라는 의미과 가치에 대한 물음을 던지다!

20대 초반, 앞만보며 그 무엇을 향해 미친듯이 달려가던 나는,
마치 고무줄끈이 팽팽하게 늘어나다 늘어나다 한계를 지나 뚝!하고 끊어져버린 것 처럼,
멍해져 버린 때가 있었다.
그때는 당연하다고, 나에게만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당연한 명제라도 인식하고 있던 가치들, 나름대로 '신념'처럼 절대적인 의미를 부여하던 것들로 부터 무작정 도망치고 싶어졌다. 이분법적인 잣대를 들어 '이거가 절대선이여! 이거 아니면 우리편 아녀~' '그렇담 등돌린 너는 바로 적!' 으로 규정해버리는 사고구조와 풍토에 좌절 했다고나 할까. 여전히 그것을 강요하는 주변이들로 부터 벗어나야 했다. 절대적인 불변의 신념따위엔 진작부터 등을 돌렸지만, 그렇다면 그 후에 난 어떻게 사고해야 하나 어떻게 인식해야하나 라는 물음에 답을 내지 못하면서.. 결국 끝없는 우울과 절망의 바다에서 허우적 거렸다.
고교시절부터 5년이 넘게 나를 지탱하던 뿌리가 송두리채 뽑혀버린 것이다.

술과 의미불명의 수다로 하루하루를 채워갔다. 살이 저절로 쪘다. 완벽한 암흑이었다.

한동안 그 어느 곳에서도 위로 받지 못했다.
연애도, 책들도, 친구들도, 학교도.. 다 부질 없었다.
혼자 술을 많이 마셨고,
마치 사춘기 소녀 반항하듯이 (이전에 추구하던 삶의 양태와는 다르게..)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에 억지로 큰의미를 부여했으며
철저하게 주변인으로 빙글빙글 돌았다. 살이 저절로 쪘다. 완벽한 암흑이었다.

그때.. 먹구름 사이를 비집고 뿜어지는 한줄기 빛처럼! 구원의 동아줄이 내려왔다.
니체. 그의 아포리즘적인 저작물들은 순간순간 나를 위로 했다.
'뭘 그리 심각해? 뭘 그리 고민해? 삶을 즐겨! 이 지독한 삶을 즐기라구!'
이렇게 도발하며, 그리고 이렇게 토닥여 주며,
'나보다는 너의 지금이 더 견딜만 하잖아!'

그의 저작물들을 다시 읽었다. 전과는 다른 느낌.
극한의 상황은 이전까지의 단순한 책읽기를 일순간에 절박하게 진지하게 바꿔주기도 하더라.
니체는 힘을 이야기 했다. 의지를 이야기 했다. 대상에 '의미'와 '가치'를 파악하게 했다. 그것은 어떠한 사고와 상황, 역사를 가지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나에게는 최고의 가치를 가질 수 있는 명제가 남에게는 별달리 중요하지 않은 그렇고 그런 명제가 될 수 있다. 참, 거짓, 좋다, 나쁘다, 선하다, 악하다 같은 자명해 보이는 명제가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니체는 그러한 개념을 권력의지에 비춰 그것에 어떤 권력의지가 작동하는지, 왜 그것을 '선'으로 인식시켜야만 했는지를 밝혀냈다. 진정한 의미의 "비판"을 시작한 것이다.
니체의 주장은 나에게 "어떤 훈늉한 철학자의 훈늉한 주장' 정도로만 인식되지 않았다. 내가 학교에서 그리고 가족에게서 그리고 사회에 대해 느끼고 있던 혼란과 갈팡질팡함을 단박에 정리해준 신호등이었고 커다란 이정표였다.

특히 속시원했던 부분은.. 데카르트의 코기토, 절대이성, 즉 '자명한 것'에 대한 비판이다.
거의 강박증처럼, 인간의 고유한 속성인 '신체'를 포기하면서 까지 '정신/이성'에 절대성을 부여하려고 했던 근대주의자들에게 '왜 그렇게 그것에 집착하는 것인지,'  수많은 오류와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고집하는 것에는 그 '절대적인 것'을 통해서 무엇가 하려고 하는 의도가 있는 게 아닌가라고 일갈한 부분이다.

결국, '신'이라는,
인간의 절대 복종을 가능케한 전지전능한 존재가 무너지자, 권력자들은 '계몽주의적인 이성'을 만들어 내, 과거 신의 자리에 위치시켰다. 계몽주의적인 이성은 '교육'을 통해 과거 '신'이 그러했듯이, 사람들을 복종 시키고 통제했다. 여전히 '계몽주의적인 이성'은 인간의 삶을 지배하고 통제하려는 그들의 권력의지를 여지없이 드러낸다. '논리' '절대적 명제' '정보의 제공'등 전 영역에서 '합리'라는 이름을 달고.. 
그들을, 그들의 관념을, 그들의 권력의지를 초극하자! 언덕 위에 올라 땅 위에서 벌어지는 군상들의 지리멸렬한 움직임을 한눈에 통찰하는 위버멘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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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위버멘쉬
그의 이상향, 더불어 나의 이상향! 아니 그는 이미 위버멘쉬였다.
파란 쫄쫄이에 빨간 팬티 입은 슈퍼맨을 상상하진 말자. 그걸 의미하는 것도 그걸 원하는것도 아니니..

2. 신은 죽었다
내 성실했던 종교생활이 점차적으로 삐딱선을 타게 된 계기.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이 가지는 신에 대한 당연한 의문에, 모든것을 다 아는 완전한 존재인 신은 왜 친절하게 답해주지 않을까, 왜  늘 자신의 피조물인 인간을 시험하고 또 갈등하게 할까 라며 투정부리다가.. 종교라는 인위적인 틀안에 가둬진, 인간의 욕망과 권력의지에 목졸라져버린 신의 죽음을 목격했다.

3. 디오니소스/광끼
술 취한 디오니소스를 완전 사랑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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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전집 (책세상)


신과 인간(혹은 님프)의 결합으로 탄생한 신. 완전한 신들의 결합으로 생긴 여타의 신들과 달리 불완전 할 수 있고, 그래서 왕따 될 수 있을 법한 태생.
그러나 그는 술과 축제라는 매혹적인 테마를 자기 것으로 만듬으로서 통제와 운율, 절제와 감춤으로 점철되어 있던 그리스 세계에 드러냄과 도취, 황홀과 격정, 합창과 서정시라는 매혹을 안겨줬다. 예술로 승화되는 삶의 의지를 아폴론 보다는 더 매력적이게 그려낸 신.
  
4. 힘/권력의지/가치
내 사고와 판단의 척도.
내가 살아가고 있는 주변과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 뿐만아니라 나의 머리속과 가슴속에서 벌어지는 사고의 과정들에 대해 호or불호를 결정할 때 쓰는 기준. 그래서 늘 변한다.
음식을 선택함에 있어 10대 때에는, 패스트푸드가 최고의 가치를 가진 것이었으면, 20대 때에는 맵고 자극적인 음식이 그자리를 대신했고, 30대가 가까워지자 국물요리에 몸에 좋은 음식이 최고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열광하는 works

1.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여전히 아무 페이지나 툭 펴서 읽으며,
문구 하나하나에 위로 받고 있는 책.
나만의 경전/잠언
 
2. 선악의저편 & 도덕의 계보
꼭 읽어보라고 막 권하게 되는 저작. 후훗~ 세상은 음모로 가득차 있다구!



몇 번이라도 좋다. 이 끔찍한 생이여, 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