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 츄리닝 입은 여자]는 미적 감각이라곤 옷 중에 딱 '츄리닝' 정도인 제가, 미술 작품들을 보고 든 느낌을 남눈치 안보고 대담하게 끄적이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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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 하르멘스존 반 라인 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1669)
: 스스로를 그린 다는 것은.

The company of Frans Banning Cock preparing to march out ( 일명 the Nightwatch)
1642. Oil on canvas. 363 x 437 cm. Rijksmuseum, Amsterdam

 

그림의 대상으로서의 인간

예로부터 사람은 주요한 그림의 대상이었지요.
르네상스나 이후 고전주의 시대 때 만들어진, 현실에는 존재 하지 않을 것 같은 경이로운 비례의 인체조각이나, 미 그 자체가 되어버리는 그림 속 여인의 나신을 보면, 화가들이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인물을 그렸는지 짐작이 갑니다.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우주의 중심으로서의 인간존재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절로 느껴집니다.

 


부인과 술한잔 거하게 드시고 계시군요.

Rembrandt and Saskia in the Scene of the Prodigal Son in the Tavern
1635. Oil on canvas. 161 x 131 cm.
Gemäldegalerie Alte Meister, Dresden



초상화의 존재 이유

1. 사람의 형상을 화폭에 옮기는 일은, 뭐랄까 약간 신비로운 느낌을 줍니다. 누군가 내 모습을 그려주면 새삼스럽게도 낯설게 보입니다. 나에 대해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이죠. 그것은 곧 나에 대해 비판적일 수 있게 된다는 말입니다. 낭만적으로 말하면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생긴다고나 할까요?. 저 같은 경우는 '아, 더 늙기 전에 즐겁게 살자. 그래도 살면서 다른사람에게 폐끼치지는 말자' 등등의 생각이 주로 듭디다. 여하튼 그림을 계기로 나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나의 모습' '나의 생각' '나의 삶'을 찬찬히 돌아보게 됩니다. 타인에게도 나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기회를 제공하지요.

2. (사진도 그러하겠지만) 초상이나 풍경을 담은 그림은 그릴 당시의 순간을 담아 놓은 기억의 저장고입니다. 그림 속 풍경이나 인물은 시간이 지나도 그 형태와 상황을 유지합니다. 일종의 영속성을 부여한 것이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초상화를 그린게 아닌가 싶어요. 동서고금을 떠나 영원히 살고 싶다는 욕망은 굉장히 강렬하게 존재했으니까요.

 


자화상을 왜 그렸을까?

자화상이 시작되고 활발하게 그려진 것은 르네상스 시대부터 입니다. 르네상스 시대는 인간에 대한 관심과 신뢰가 넘쳐나던 시기입니다. 신에서 사람으로 옮겨진 시선이 자연스럽게 '자신'으로 귀결된 것이겠지요.
사람들에게 나를 표현하고자 하는 의지는 사회적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개성 넘치는 외모로든, 화려한 언변으로든, 소박한 글로든, 아름다운 춤으로든 뭐든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하지요. 자화상도 같은 맥락에서 화가 자신이 자신의 모습을 표현하고 기록하는 수단의 하나입니다. 뿐만아니라, 위에서 언급한 것 같이, 자기가 자기를 인식하는 방법이기도 하지요. 누군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자화상은 화가 자신의 자서전'입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규명하는 것이죠.
경제적인 이유도 있을 것입니다. 렘브란트가 살던 당시 화가들의 주 수입원은 귀족이나 부자들의 초상화를 그려주는 것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의뢰인의 초상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모습도 그리게 된 것이겠지요. 게다가 자화상은 모델비도 안들잖아요 ^^. 그리고 언제든 원하는 때에 작업을 할 수 있고요. 무척 매력적인 요소지요.




Self-Portrait
1640. Oil on canvas. 102 x 80 cm. National Gallery, London



렘브란트의 자화상

렘브란트는 젊었을 때부터 나이가 들어 늙은 모습에 이르기까지 평생 동안 100여 점이 넘는 자화상을 그렸습니다. 그의 자화상만 보고 있어도 그의 전 생애를 관통하는 삶과 예술에 대한 자세를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사실적이게 그려져있습니다.
빛의 마술사라는 평가에 걸맞게 렘브란트의 자화상은 빛과 어두움의 대비를 통한 극적 효과를 잘 살렸습니다. 마치 어두운 연극무대 한가운데 서있는 주인공에게 은은한 조명이 비추고 있는 것 같지요.
그의 자화상은, 자신의 지위를 드러내기 위해 과하다 싶을 정도로 미화한 다른 화가들의 자화상과는 달랐습니다. 담담하게 자신의 모습을 마주한 그는 자화상을 통해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냈습니다. 그의 자화상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지요.

젊은 시절 자화상 속의 그는 굉장히 즐거워 보입니다. 살도 통통하게 찌고 입성도 무척 화려합니다. 부모님도 부자였고 그 자신도 유명 화가로 잘나갔다던데 그 태가 팍팍 나는군요. 짱짱한 '허세'가 느껴집니다.




Portrait of the Artist at His Easel
1660. Oil on canvas. 111 x 90 cm. Musée du Louvre, Paris



하지만 영원한 것은 없는 법, 나이가 든 그의 그림속 모습은 다릅니다. 그는 늙어 볼품 없는 자신의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냈습니다. 거품을 걷어내고 가식없이 그려진 그의 모습을 보면 삶을 겸허하게 응시하는 노련한 화가의 모습이 느껴집니다. 굴곡진 인생이 그대로 느껴지는 그의 주름, 붉어진 코, 흰 머리, 남루한 복장. 
고통의 심화가 예술적 감수성을 깨워주는 걸까요? 말년에 사랑하는 이들의 연이은 죽음을 경험하고 거기에다가 경제적인 파산까지 맞아야 했던 렘브란트는 아이러니 하게도 그 시절에 가장 원숙하고 소위 '가장 렘브란트 스럽다'라는 평을 받는 작품을 만들어 냅니다. 아... 역시 고통은 예술가에겐 피할 수 없는 소나기, 창작의 불을 지피기 위한 기름인 걸까요?








난 따라쟁이, 나도 나의 모습을 그려보겠어!
욕심이 생겼습니다. 저도, 저의 모습을 기록하여 남겨 보렵니다.
스케치북에 5년에 한번꼴로 변하는 내 모습을 그려볼테야요.
자신의 모습을 그리는 동안, 저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요? 렘브란트의 기분이 될 수 있을까요? (허허허...)
그려진 각각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요? 없는 재주로 나는 나의 모습을 어떻게 표현할까요?
부끄러움을 많이 타기는 하지만... 기회가 되면...
뭐 어떻게든 사람들에게 보일 날도 오겠지요.
(참고로, 전 24살 이후로는 붓을 잡아본 기억이 전혀 없습니다... 쿨럭)




노년의 자화상 두 작품 더 
























Self-Portrait
1661. Oil on canvas. 114 x 94 cm. English Heritage, Kenwood House, London



























Self-Portrait
1669. Oil on canvas. 86 x 70.5 cm. National Gallery, London

 

작은 소요 가 일어났었네요. 제 블로그에.
순식간에 방문자가 십만명이라...어리둥절 합니다. 현실감이 없어서 그냥 멍하니 보고 있기만 했었는데, 한편으로는 저 아수라장안에 들어가 사람들과 치열하게 소통했어야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어떻게 해야 최적의 행동이었을지는....... 하늘만이 아시겠죠. ㅋㅋ

여하튼 언제 그런 소동이 있었냐는 듯, 제 블로그는 다시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고생 많았다고 수고 했다고, SAVE A TREE 양을 토닥여 줘야 겠네요. 그런 의미로다가 미&츄 올려 줍니다!

[미술관 & 츄리닝 입은 여자]는 미적 감각이라곤 옷 중에 딱 '츄리닝' 정도인 제가, 미술 작품들을 보고 든 느낌을 남눈치 안보고 대담하게 끄적이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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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우리츠 코르넬리스 에셔  M.C. Escher (1898~1972) : 무한의 공간을 창조하다!


그림 그리는 손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에 등장하던 오묘한 느낌의 그림을 기억하시나요?  그림에서 튀어나온 손이 쥐고 있는 펜은, 앞의 다른 손의 소맷부리를 그리고 있고, 그려지는 그 손 역시 평면에서 튀어나와 펜을 쥐고, 마주하는 손의 소맷부리를 그리고 있는.
그림과 손의 경계가,
평면과 입체의 구분이 무너지는 순간입니다.


에셔를 처음 알게 된 것은(아.. 미학오디세이를 읽으며가 더 먼저 겠네요. 하지만 그때는 그냥 독특한 일종의 '삽화' 정도로 생각했던것 같습니다. 휴머니스트에서 나온 증보판 말고 새길인가 에서 나온 책으로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2002년 도서관에서 본 그의 판화집을 통해서 입니다. 졸업 즈음 학교 도서관을 즐겨 이용해 주면서 당시의 경제력으로는 돈주고 사기 힘든 하드커버나 유명 화가들의 화보집들을 슬슬 살펴보았거든요. 종종 외국책들도 있었지요. 에셔의 판화를 우연히 본 그순간은 무척 충격적이었습니다. 두근두근 심장 뛰는 소리가 제 귀에 들릴 정도로 급 흥분했었어요. 당시 빠져있었던 개똥철학(?)과 싱크로율100%!!!! 때문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에셔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몇가지 키워드가 있습니다. 그것은 당시 제가 빠져 있던 개똥철학(?)과 뒤섞여 형성된 이미지이기 때문에 사실 명확하게 에셔만의 유니크한 느낌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보통의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보며 느끼는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며 소개해 봅니다.



1. 모호한 경계에 대한 묘사


천국과 지옥

제 블로그에 소개란에 쓰고 있는 그림이죠.
제목은 <천국과 지옥>.
선과 악의 모호한 경계, 아니 어쩌면 '경계없음'을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선과 악의 구분은 지극히 상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절대적인 선, 절대적인 악은 없어요. 하지만 이런 선명한 사실을 우리는 잘 인식하지 못합니다. 왜냐? '선'이 있다고 가정을 해야 이런저런 규범, 의무, 책임 뭐 이런 개념들이 쉽게 설명이 되고,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거든요. 천국, 이데아의 세계, 선이 구현되는 세상같은.
하지만 제 생각에 이런 개념들은 새빨간 '뻥'입니다. 애초에 절대적으로 선과 악이라고 구분되는 어떤 것은 없거든요. 이 한장의 그림이 그것을 명쾌하게 설명해 줍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제가 무척 좋아라 하는 작품이지요.
어쩜 어떻게 이렇게 표현할 생각을 했을까요!!.. 뻥 조금 보태면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2. 무한한 반복

무한 원형

무한 평방



영겁회귀. 영원한 시간은 원형, 그 원형의 시간 안에서 모든 생은 무한히 반복됩니다. 아아.. 반복되는 생의 흐름을 참말로 딱이다 싶게 표현한 작품 아닙니까? 저 작은 종이 공간 안에 무한을 담았습니다. 말이 필요 없습니다.

 

3. 규칙적인 분할과 리듬감




에셔는 강의를 많이 다녔고, 편지글을 남이 남겼습니다. 그는 강의의 내용과 남겨진 편지글에서 그의 주관심사가 평면의 규칙적인 분할이라는 것을 수차례 강조했습니다. 그가 분할해 놓은 평면은 아아.. 그래요 아름답습니다. 그의 그림속에 담겨 있는 구조를 발견하는 재미가 무척 쏠쏠하죠?
그리고 자세히 귀를 귀울여 보세요. 사이사이 긴장 속에서 나오는 소리 아아....음악이 되었네요. 어깨를 들썩거려야 할 것 같습니다.

 


4.저 따위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수학적' 깊이

뫼비우스의 띠



뫼비우스의 띠... 에셔는 수학의 원리들을 그 자신만의 독창적인 방식으로 시각화하는데 능했어요. 많은 수학자들이 그의 작품을 보며 감탄했다고 하죠. 수학과 에셔를 연계시킨 아티클들도 많고... 하지만 저는 '하더라구요' 라고 밖에 소개할 수 없습니다. 수학.... 앞에서면 저는 작아지거든요. 그치만 앞으로도 수학공부 할 생각은 없답니당~  헤헤헤^^

 


에셔에 대해서는 서로 이야기 나눌 꺼리가 무궁무진하게 많을 겁니다.
그의 작품은 보는 사람들의 상상력을 '무한 자극' 하니까요.
여러분도 망설이지 말고 지금, 에셔의 작품에 대해 느낀 점을 이야기 해보세요.



아!
4.단락 '수많은 수학자들의 그의 작품을 보며 영감을 얻었다고 하더라구요' 라고 써 놓았던 문장에 대해 'EOP' 님께서 지적해 주셔서 2008.11.21 오전 10시 36분 관련 내용을 수정하였습니다. 고맙습니다.
앞으로 귀찮다고 막 쓰지 말고, 한문장 한문장 꼭꼭 생각하고 쓰겠습니다.


 
[미술관 & 츄리닝 입은 여자]는 미적 감각이라곤 옷 중에 딱 '츄리닝' 정도인 제가, 미술 작품들을 보고 든 느낌을 남눈치 안보고 대담하게 끄적이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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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루소 Henri Rousseau  (1844 ~1910) : 40살이 넘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늦깎이 화가

가난합니다. 찢어지게. 그러나 아이에겐 예술적 감수성이 흘러 넘쳤습니다. 어쩔 수 없이 가슴에 품은 불덩이를 한켠으로 치워 두어야 했습니다. 십수년의 세월을 돌고 돌아 어릴때 접어 두었던 욕망을 펼쳤습니다. 사람들의 냉소와 무관심이 두려웠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끝까지 예술의 길을 지켜냈습니다. 물론, 쭉~ 가난했습니다.


1. 미술가가 되기 위해서는...
미술을 하기 위해서는 돈이 많이 듭니다. 원래 가진돈이 없다면, 배우기도 힘들지만, 용케 배웠다 하더라도 명성을 얻기 전까지는 알바도 뛰고 하면서 가난하게 살아야 합니다. 오늘날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루소가 살던 시대도 역시 그랬습니다. 이름있고 인정받는 화가가 되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여유가 필요했습니다. 쟁쟁한 대가의 사돈의 팔촌이라도 알아야 하고 좋은 미술 학교도 나와야 했지요. 루소는 유명한 화가되기 필수조건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습니다.


자화상. 앙리루소. 1890



2. 주중엔 세관원 주말엔 화가

루소는 가고 싶었던 화가의 길을 애써 외면하고 생계를 위해 세관원이 되었습니다. 내내 그림그리는 것을 동경하다가 40살이 훌쩍 넘어서야 늦깎이로 미술가의 삶을 살게 됩니다. 스승 없이 독학으로 공부했지요. 평일엔 세관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그림은 주말에만! 그래서  ‘일요화가’라고도 불리웠습니다. 미술학교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기본이 안되있는 화가'라는 사람들의 조롱을 견디어야 했습니다. 수없이 좌절했고, 실패했습니다.
전업작가로 살아가게 되면서부터는 살림살이가 궁핍해졌습니다. 빚을 지게 되었고, 돈을 벌기 위해 동네 아이들을 상대로 미술 교습을 해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워낙 이문에 밝은 스타일이 아니라 손에 돈을 쥐여지는 일은 별로 없었다고 합니다. 말년이 되어서는 그의 그림이 그럭저럭 팔리기 시작해, 약간의 수입이 생겼는데, 그것마져 동네사람들에게 음악회와 전시회를 열어주는 용도로 사용했으니... 말 다했죠.
하지만 그는 끝까지 미술가로 살아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3. 한국에서 미술가가 되기 위해서는...
40대 늦깎이 화가로 데뷔한 루소를 보면서, 한국의 미술 교육에 대한 생각에 잠깁니다.
부모의 부와 지위가 자녀에게 되물림되는 이 지독한 부의 '세습'사회에서, 가난한 집 아이의 예술에 대한 열정은 꽃 피우기도 전에 묻혀버리기 쉽습니다.
공교육을 통해서는 아이의 예술적 감각을 독창적으로 키우고, 표현하는 스킬을 배우기 어려운 현실이고,(저저..경쟁적인 교육으로 아이들 힘을 쪽쪽 빼고 있는 꼴을 보십시오. 휴...) 그런 맞춤 교육을 위해서는 사교육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인데 예능교육은 그 비용이 어마어마 하니까요. 부모님들은 아이의 재능을 키워 줄 수 없는 자신의 경제적 무능을 무척 한스러워하며 남몰래 울겠죠.

'그 어떤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꿈이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도전해야 하는 것 아닌가?'는 궤변입니다.
아이들에게 슈퍼맨이 되길 강요하면 안됩니다.
한국사회에서는 사교육-미대진학 외 다른 방법으로 화가가 되는 길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용케 다른 방식으로 화가가 되었더라도, 소위 별볼일(?) 없는 화가라면 먹고사는 문제를 다른 영역에서 해결해야 하지요. 하고 싶은 것을 맘껏 하면서 동시에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기란 쉽지 않다는 걸 알게된 아이들은, 꿈 보다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먹고 사는 것을 선택합니다. 그걸, 비겁하다 하는 건, 지나가던 개미가 웃을 일입니다.


잠자는 집시. 앙리 루소. 1897





4.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술과 '접속'해야 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술을 하고 예술을 즐길 수는 없는 걸까요? 가난한 사람이 예술하는 세상은 정말 요원한 것일까요? 아니, 아니어야 합니다. 아니게 만들어야 합니다.
방법은 크게 두가지 겠네요. 

우선은,
공공 교육 입니다.
공교육에서 아이들에게 맞춤식 교육을 제공하는 겁니다. 미술이나 예능의 영역도 마찬가지로요. 도달하는 과정이 힘들고 어렵더라도, 그래야 합니다. 돈 없어서 꿈을 접는 아이들이 있는 세상은 더욱 어렵고 절망적일 꺼니까요.

 - 프레시안 핀란드 교육탐방 시리즈 기사 中  "부모 잘 만나야 우등생…벗어나려면"

다음은
지역 공공 작업실&미술관입니다.
1) 학위가 없어도 예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직업 예술가들만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작업실이 필요합니다. 누구나 미술을 배우고 제작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2) 예술가들이 작품을 생산하고 대중(지역주민)과 만나는 공간이 턱 없이 부족합니다. 이건 예술가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소통이 되지 않으니 먹고 살 방법이 나올리가 없습니다.
3) 소박한 예술을 할 수 있는 공간, 그리고 전시하여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 그리고 와글와글 감상과 느낌이 소통할 수 있는 매체와 사람들이 지역마다 필요합니다. 공공 도서관 처럼, 공공 작업실 & 미술관이 필요합니다. 전시만 하는 공간으로 머물면 안됩니다. 생산하고 교육하고 전시하고 소통하는 장이어야 합니다.

 - 같은 주장을 하는 블로거가 있네요! 지역의 디테일이 만든 영화, <구구는 고양이다>

루소가 꿈을 끝까지 지킬 수 있게 한 원동력은,
끝없이 살롱과  낙선자모임전[각주:1]에 자신의 그림을 전시하여 대중들과 소통하고자 한 것일 것입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술과 접속하게 되면, 살길은 열리는 거지요. 더 많은 사람들의 지평을 넓혀지고, 마음에 울림을 주고 사람들로 하여금 작품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동네에서 미술작품을 만들고 배우고 감상하고 이야기하는 장이 필요합니다. 그 역할을 동네의 공공 작업장&미술관이 할 수 있을 겁니다.


뱀을 부리는 여인. 앙리 루소. 1907

 



  1. 살롱에서 선택받지 못한 작가들의 모임. 실력이나 소속에 상관없이 누구나 가입할 수 있었으며 직업화가가 아니라도 상관없었다. 루소는 꾸준히 이 낙선전에 자신의 그림을 전시했다. [본문으로]
[미술관 & 츄리닝 입은 여자]는 미적 감각이라곤 옷 중에 딱 '츄리닝' 정도인 제가, 미술 작품들을 보고 든 느낌을 남눈치 안보고 대담하게 끄적이는 공간입니다. 
'이건 뭐야?' 하시는 분은 이곳을 클릭! 구차하지만 구구절절한 사연이 펼쳐 집니다.  


에곤 실레 Egon Schiele (1890 - 1918) : 에로틱! 에로틱! 에로틱한 오스트리아의 화가.
욕망에 충실한 삶을 살아라. 설사 그것이 비도덕적이라 하더라도!


1. 누드화에 대한 생각.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에 따르면 예술은 모방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모방하고자 하는 욕구는 본능적인 것이라 했습니다.
무엇을 모방하는 걸까요? 우리의 삶. 현실이겠지요.  그렇다면 현실 그대로의 모습과 상황을 모방하는 것이 예술일까요? 그것이 과연 가능할까요? 아닐것 같아요. 예술은 현실을 100% 재현 해 낼 수 없습니다. 그것은 기술적으로도 불가능 하고, 그럴꺼면 예술이라는 것을 할 필요가 없지요. 현실이 곧 예술인 거니까요. (어라~ 근데 이말도 그럴 듯 하네요.) '모방'의 측면에서 볼 때 예술은 삶의 '재현 또는 재생산'이 아니라 일종의 '변형'입니다. 그림이나 음악이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지는 못하니까요.

'변형'
대체 우리는 이 변형에서 무엇을 얻어 내길래 '예술'이라는 걸 하고, 감상하는 걸까요?
초초초 천재 아리스토텔레스 님은 '카타르시스:정화' 라고 합디다. (노인네, 참으로 명쾌합니다. )
전, 초초초 둔재라 '삐그덕'이라고 표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설명하자면, 그러니깐, 어떤것에 대해서 이러저러하게 뻔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예술이란 녀석이 '어머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 라는 감탄사가 나오도록, 제 사고의 '허'를 찌르는 거죠.
전형적인 틀이 깨지고, 균열이 생기고, 새로운 틈(공간)이 만들어집니다. '삐그덕' 한 만큼, 사유의 지평이 넓어지고, 느낌의 정도가 짙고 깊게 되는 거죠. 이것이 바로 예술에서 우리가 얻는 것이고, 예술이 지금껏 존재하는 이유라고 생각하고 있습죠.

누드화를 보면서도, 이러한 보편적인 예술에 대한 시각이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심장 박동을 즉각적이게 상승시켜 안면에 발그레한 홍조를 띠게하는 누드화.  사실, 더욱 사실적인 재현, 현실모습 그래로를 원한다면, 약간 위험이 있긴 하지만, 동네 목욕탕을 훔쳐 보는 것이 '벗은몸'에 대한 정보를 확실하게 입수하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그 행동을 통해, 제가 얻고자 하는 '삐그덕'이 벌어질까 의문 스럽습니다. 뭐 어떤식으로든 약간은 분명 생길 겁니다. 하지만, 결코 '그럴듯'하지는 않은 종류의 것이겠죠. ㅎㅎ

여하튼 누드화를 통해 얻는 '삐그덕'은 사람몸에 대한 새로운 시각(찬미이던 폄훼이던)이 일차적이겠지만, '벗은 몸'이라는 것은 필연적으로다가 '관능'을 불러옵니다. 적나라하게 벗은 몸이 이후에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를 상상하며 흐흐흐... 우리는 음흉해 지죠. 그래서 우린 때론 누드화를 통해 '관능'을 일차적으로 얻기도 합니다.
 



2. 실레의 삶

실레는 28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짧은 생이지만 참으로 많은 이야기 꺼리를 만들었지요.
그의 아버지는 매독에 걸려 죽었는데 (당시 오스트리아에서 매독은 매우 흔한 병이었다고 합니다.) 실레의 눈에는 어머니가 아버지의 죽음을 그다지 슬퍼하지 않은 것으로 보였나 봅니다. 그래서 실레는 그의 어머니를 내내 무척 미워했데요. 그의 어머니가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찌되었건 실레의 애정이 아버지에게만 향해 있었다는 건 무척 의아한 일이죠. 전 전혀 반대일꺼라고 예상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일까요? 그과 그의 여동생과의 관계가 참 독특합니다. 그의 여동생은 그를 위해 누드화의 모델이 되어 주었고, 누드화 모델은 성인이 되어서도 이어졌다고 해요. 제 생각엔 아마도, 사랑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성인 여성인 어머니에게서 느낀 실망에 대한 보상심리였을까요? 소녀이고 어린 동생에게서 순수함과 관능을 동시에 느낀 것이죠. 실레에겐 그녀의 동생이 그림의 대상이 되고, 애정의 대상이 되었던것 같습니다.

실레는, (예술가의 삶이 의례 그렇듯?) 허세를 즐겼던 사람 같아요. 나름대로 이름이 알려져 경제적으로 넉넉한 상황이 되었는데도, 예술가는 모름지기 가난하고 약해야 한다며, 안그런데도 그런척 하며 살았데요. ㅋㅋ 뿐만아니라  말과 행동이 달랐던 것 같기도 하고, 이상과 현실을 철저하게 구분할 만큼 영악한 것 같기도 합니다. (글쎄, 수년간 그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베풀던 여인을 차버리고, 귀족(중산층) 여인과 결혼한데요... 쳇)

'키스'라는 그림으로 유명한 클림트는 실레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를 후원했습니다. 둘은 이후에도 각별한 사이를 유지하지요. 초반에 실레는 클림트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후에는 그의 영향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그림 세계를 창조합니다. 두리뭉실함이 아니라 직설적이고 솔직한 화법으로! 말이예요.

요약하면 그는,
 '관능'에 대한 집착 과
 속물적 기질을 보유하고 있으며, 허세를 즐겨 부린다 는 것 . 흐흐흐



3. 그의 작품을 보며 난 이렇게 '삐그덕'했다!


1) 절박함 : 절박한 욕망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다.


포옹, 1917, 캔버스에 유채, 100 x 170.2cm

포개지기 직전의 남녀, 미친듯이 절박하게 서로의 몸을 탐하고 있음이 느껴집니다. 지켜보는 관객의 시선 따위 아랑곳 하지 않고 두 인물은 타오르는 욕망에 충실하게 서로의 몸을 안습니다. 나아가 '우리의 욕망 속에 너희도 끼어들어 봐' 라고 유혹하는 것 같아요. 모델이 있었다면 그들은 정말 서로의 몸을 간절하게 원하는 상태였을 것입니다. 리얼함의 극치. 이건 화가가 시켜서 취할 수 있는 포즈가 아닌거 같아요. 흐드러진 머리카락 드러난 체모, 꿈틀거리는 근육과 복잡하게 흐트러져 있는 흰 시트.
아...저도, 그를 안고 싶습니다. 갈비뼈가 으스러지도록.
없던 욕망도 불끈 불끈 생기게 하는. 절박함의 힘!



2) 도발 : 정면으로 관객을 응시하는 저 눈빛, 내가 졌소!



헝크러진 머리, 오르가즘에서 막 헤어난 듯한 저 끈적끈적한 눈빛, 나를 정면으로 응시합니다. 아... 떨려요.
동네에서 좀 놀면서 남자 여럿 울렸을 법한 자세와 눈빛, 하지만 그녀는 아직 앳된 '소녀' 입니다. 요부와 소녀의 모습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그녀는 묘한 분위기를 풍기면서 관객 마음의 빗장을 두르립니다. 씩씩한 주먹질이 아닙니다. 발가락으로 살살살, 빙글빙글 묘한 미소를 지으면서...
'두근두근' 합니다. 그녀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남정네가 있을까요? ㅋㅋ 

몰락한 제국, 거리의 화랑에 누드화가 넘쳐났다고 하지만, 그래도 이 소녀의 등장은 그때도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 같습니다. 야동이 넘쳐나는 요즘 시대의 관객도 그녀의 눈빛을 정면으로 받아치지 못할 꺼 같으니까요.

검은머리의 소녀,
1911,
종이에 연필과 수채화,
56.2 x 36.7cm





다리벌린채 누워있는 누드,
구아슈와 연필,
47 x 30 cm



적나라 합니다. 보란 듯이 체모와 음부를 드러냅니다.
두리뭉실 야릇한 뉘앙스만 풍기는게 아니라, 그냥 밀어붙여서 다 드러냅니다.
아름다운 바디라인? 그런건 없습니다.
'이래도? 이래도?'
저에게 시비를 걸고 있는 것 같습니다.
'너의 몸도 이렇잖아!' '너도 욕망 덩어리잖아!' '점잖은척 따윈 집어치워!' '옷을 벗고 거울앞에 서서 눈 똑바로 뜨고 너의 모습을 봐!' '그것을 두려워하지마!'
너무 적나라해서 불편합니다. 적당히 감추고 꾸며줘야 쉽게쉽게 편하게편하게 볼텐데... 마치 숨기고 있던 나의 알몸이 만인 앞에서 공개 된것 같아, 부끄럽습니다.   



3) 신경질, 불안 : 너무나 인간적이다! 그래서, 반했다!



그는 수천점의 드로잉 수백개의 회화를 남겼어요. 자화상들이 굉장히 많은데, 그의 자화상들을 보면서 그는 분명 자신의 불안과 신경질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저 기묘한 몸의 각도와 포즈 표정을 보세요. 편안함과는 수천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듯합니다. 지독한 자기연민.
자기 내면의 모습을 시각화 하기 위해 전전긍긍 끙끙거리며 애썼을 실레의 모습을 떠올리니, 아~ 너무나 인간적입니다. 지극히 인간적입니다. '욕망에 충실한 삶'과 '위선적인 사회적 시선' 사이에서 갈등하고 불안해 하는 실레, 그리고 그 때문에 극도로 예민해진 그의 세포들. 거친 연필질.



 

4. 허무하게도...... 28살, 감기 걸려 죽다.


실레는 전쟁터에서,
임신했던 그의 아내를 독감으로 저세상으로 보내고, 얼마후 그도 감기에 걸려 죽습니다. 28살에!

내 나이 보다 조금 살다 갔네요.
제길. 비교가 무의미 하다는걸 잘 알고 있지만, 그의 삶의 모습이 왠지 오늘을 사는 한국의 젊은이들의 삶의 모습,( 아아 이렇게 일반화 하는건 비겁한 모습.) 아니, 제 모습과 겹쳐지는 부분이 있어서...
위인전 읽듯, 그의 생몰년도를 건조하게 지나칠 수가 없군요.

조심해야 겠습니다. 전쟁터를 휘돌던 독감에 걸려버리면, 죽음을 다이렉트로 맞이해야 하잖아요.
2008 하루하루가 전쟁터 같은 삶에서, 독감 따위, 저에겐 스치지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생을 그렇게 허무하게 마무리 하고 싶지 않아요. 사람들에게 슬픔을 남겨주고 싶지 않습니다. 실레가 죽었을 때 유럽의 화단이 느낀 절망과 슬픔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욕망에 충실하게 사는 삶을
다시한번 결심하다.


실레의 그림을 보면서 다시한번 다짐 합니다. 욕망에 충실한 삶을 살겠습니다. 지나간 과거에 매어 울지 않고, 허황된 미래에 취해 허우적 거리지 않고, 현실의 욕망에 충실하게 살아 가겠습니다. 욕망이 만들어내는 기형적인 형태를 낯설어 하지 않겠습니다. 그것이 풍기는 관능을 즐기겠습니다. 무척, 아름답지 않습니까? 그런 삶이, 그런 삶이 담긴 그의 그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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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브 도레 Gustave Dore (1832~ 1883) - 19세기 프랑스에서 최고로 잘나가던 일러스트레이터



2년전 인가, 어느덧 생일을 챙기기 민망한 나이가 되어, 선물을 받기가 무척 새삼스러워진 20대 후반의 생일날, 전 욕심을 부려 친구에게 이 책을 사달라고 졸랐습니다. 친구는 흥쾌하게 yes라 이야기 했고, 책을 받아 든 날, 전 기쁨에겨워 그만, 작은 선술집에 친구와 마주 앉아 고갈비에 소주를 끝없이 퍼부어 마셨습니다. 다음날 쓰린 속을 부여 잡고 괴로워 했지만! 그 혼미한 와중에도 이 책을 품고 덩실덩실 춤을 출 정도로 신났더랬습니다. 흐흐흐.
그렇게 구스타브 도레의 삽화가 그려진 돈키호테가
저에게 왔습니다.

물론 다른 초호화 양장본 책들도 다수 소유하고 있습니다. 판형이 이것보다 더 크고 올 칼라로 번쩍이는 책들도 있어요. 그런데 왜 유독 이 책에 열광했느냐? 그 이유는 바로, 두말 할 것도 없이 구스타브 도레의 삽화 때문입니다.




그의 그림을 접하게 된건 그렇게 오래전 일은 아닙니다. 나이 들어서도 동화, 우화, 민담 등에 환장해 있는 저는, 서점에서도 오래된 이야기 코너에 자주 머무는데, 거기서 구스타브 도레의 삽화가 들어간 샤를 페로 동화집(아마, 맞을 껍니다 )를 보고 완전 빠져들었습니다.

한컷 소개하죠.

빨간모자

아... 소녀의 눈빛 저 눈빛!

 

아아.. 이 긴장된 순간. 늑대와 소녀의 배치와 구도를 보세요. 적대적인 두 존재가 서로를 탐색하며 천천히 비켜 가고 있습니다. 결코 어느 한 놈이 섣불리 먼저 뛰어 들 수 없는 팽팽한 힘의 균형! 세포 하나하나가 털 하나하나가 쭈삣 서있는 듯한 긴강잠!


그러나 당시엔 주머니에 '돈'이가 없었기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돌아서야 했죠.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내 다음에 꼭 도레의 삽화가 들어있는 그럴듯한 책을 사리라!' 주먹을 부르르 떨었습니다. 하지만... 늘 그렇듯 고질적 깜빡거림에 의해 아련하게 잊혀졌다가 돈키호테 책이 나왔다는 광고메일을 보고 '아 그때 내가 그런 비장한 결심을 했었는데' 가 떠오르고......  다시 불타오른 겁니다.



삽화란 모름지기...
삽화가 단순하게 글 내용을 설명하는 보조적인 역할에만 머무르면 재미가 없습니다.
삽화는 책 안에서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단 말입니다. 삽화가가 선택해서 묘사한 장면, 그것은 이제 무수히 많은 이야기 중 하나에 그치지 않습니다. 시각적으로 재현된 그것은 독자에게 즉각적으로 흡수 되고, 그들의 기억에 깊게 각인 됩니다. 순간 그 장면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핵심적이고 중요한 사건이 되는 겁니다. 삽화가  이야기의 리듬을 주도한단 말입니다. 얼마나 신나는 일입니까? 거기다가, 끝내주는 삽화가의 작품은 글이 보여주지 못한 부분을 독자에게 보여 주기도 합니다. 작가의 상상력과 삽화가의 상상력이 더해지는 겁니다. 따블로다가 독자의 시야를 넓혀주는 거죠.
삽화가 만들어 내는 이야기 속 또다른 새로운 세계!
 
도레의 삽화는 '경지에 다다른 이의 포스'가 느껴집니다. 게다가 그가 창조해 낸 세계는 무척이나 매력적입니다.


도레 삽화의 특징 :  왜 열광하는가?

돈키호테 삽화

망상에 빠진 돈키호테의 모습



1) 극도의 섬세함

저 세밀한 선을 보세요. 약간 어지럽죠? 끈기를 가지고 계속 보다보면 눈에 익숙해 집니다. 그리고 찬찬히 망상에 빠진 돈키호테의 모습을 찾아보세요. 홀쭉한 몸매, 멍한 눈, 한손엔 책을 들고 칼을 하늘 높이 치켜 들고 있네요. 결투장이나 전쟁터가 아니라 서재에서요. ㅋㅋㅋ  단박에 그가 어떤 인물인지 알아 차릴 수 있을 것 같죠? 뿐만 아니에요. 섬세한 묘사 퍼레이드입니다. 세밀한 커튼의 결에서 큰 머리의 머리카락으로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연결과 전환, 탁월! 쥐를 타고 결투하는 쪼끄만 기사들은 귀여워서 깨물어 주고 싶어요! 돈키호테 주변에서 왁자지껄 웅성거리는 것들은 그의 망상들이에요. 도레에 의해서 돈키호테의 망상들은 모양과 움직임을 가진 살아 있는 존재들로 묘사되었죠. 금방이라도 튀어 나올 것 같습니다.
아... 그의 디테일, 디테일 ,디테일! 당시의 유럽 사람들이 왜 그의 그림에 열광했는지 완전 이해가 갑니다.



2) 환상적인 분위기
얼핏 섬세한 묘사는 환상적인 분위기와 잘 매치되지 않는 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보세요! 그렇습니까? 섬세하게 묘사된 가운데 펼쳐지는 이 환상적인 장면을 보세요. 구도가. 감탄을 절로 자아 내는 군요.



이 그림이 어떤 이야기 속의 한장면 인지 알지 못해도 상관 없습니다. 그림 자체가 주는 감흥에 푹 빠져 들어 보아요. 강을 따라 흘러 가고 있는 여인의 주검, 아마도 저기 멀리 보이는 성스러운 성으로 가려는 거겠지요. 여인의 얼굴의 빛나는 걸 보니 아마도 그녀는 고귀한 신분이었나 봅니다. 성 위에도 상서로운 빛이 감돌고 있어요. 천사라도 내려올 것 같습니다. 강물은 잔잔합니다. 그 위를 노저어 가고 있는 사공과 그녀! 아... 소리와 냄새가 그리고 공기의 기운이 느껴질 것만 같습니다. 분명 저 곳엔 안개가 끼어 있었을 꺼에요.


 
3) 독창적인 해석
삽화를 단지 글 내용의 설명 용도로만 제한하면 재미가 없습니다. 삽화가 자신의 생각을 반영시켜 새로운 해석을 덧붙야 신나지요. 돈키호테를 묘사한 도레의 삽화엔 돈키호테에 대한 반짝이는 그의 해석이 담겨 있습니다. 도레는 돈키호테의 코믹한 캐릭터를 극대화 시켰어요. 딱딱하고 굳어 있는 표정과 동작이 아니라 생동감 넘치는 표정과 동작묘사로 그의 코믹성을 더욱 키워주고 독자로 하여금 그것을  생생하게 느끼게 해줬답니다.
(단테의 신곡에 그린 삽화에도 그의 반짝거리는 해석이 담겨있다고 합니다만, 성경에 들어간 삽화도 무척 독특하고 아름답다지만, 아쉽게도 전 못 봤네요. 하하하)



역시 그도, 천재였다... 작품에서 빛이 난다.

도레는 아주 어릴 때부터 유명한 책의 삽화를 그릴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조기에 표출했다고 해요. 전형적인 천재인거죠.......(분명 노력을 했을꺼야.. 그랬을 꺼야.. 태어나면서 재능을 가졌을리가 없어.. 암암 물론이지..아아아아~~ 천재라는 거대한 벽!) 열댓살 꼬마 녀석이 당시 최고의 원고료를 받아 챙겼다니까요. 그림 좀 사 모으고 방귀 좀 뀐다 하는 사람들이 다 그의 그림을 방에 걸어두고 싶어 했데요. 
고흐도 도레를 좋아라 헀고, 피카소도 도레에게 뿅갔다고 하니,
내가 '그는 대단해'라 떠들지 않아도, 이미 그는 경지에 오른 존재!
작품에서 빛이 나는 건 당연지사!?!
(약간. 허탈해 지는 이유는 왜일까요......  신은...... 공평하지 않아요)

마무리 즈음..... 퍼뜩!
도레가 만약, 삼국지의 삽화를 그렸다면 어땟을까요?
소설 태백산맥의 삽화라면? 아마 더욱 비장미가 살아나고, 디테일하고 사실적인 묘사 속에서도, 뭐랄까... 이상향의 세계를 쫘악~ 펼쳐 놓겠죠?

빛이 나는 작품을 볼 때마다, 시공을 초월할 수 있다면, 내 눈앞에서 숨쉬며 작품을 만드는 그 또느 그녀를 만나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과학기술이 저의 바램을 실현 시켜 줄 수 있을까요? 저 죽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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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헤링 Keith haring (1958-1990) -80년대 미국 뉴욕에서 활동한 낙서화 화가 


지난 봄 여의도역에 갔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역 전체 벽에 되어 있던 랩핑광고. 실로 엄청난 시각적 자극이었습니다. 벚꽃사진으로 벽 전체를 도배했었는데, 엄청난 규모에도 압도, 생생한 프린트 상태에 놀람!
광고가 무섭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벽화가 가지는 공공의 효과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순간 퍼뜩 떠오름'에서 그치고 말았죠. 생각을 더 이어가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몇주전에 20세기 라틴아메리카 거장전에 다녀왔어요. 멕시코 혁명 시기 벽화운동을 주도했던 디에고리베라, 오로스코 등 거장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멕시코 사회에 대한 사실적인 때로는 상징적인 묘사들을 보면서 '그들은 왜 벽화 운동을 벌였는가?' 가 궁금해 졌습니다. 벽화가 머금고 있는 대단히 큰 영향력에 관심이 갔습니다.


그리고, 키스 헤링. 지하철역이나 담벼락에 그렸다는 그의 낙서그림 (Graffiti)


사진 : 키스헤링 재단 http://www.haring.com


벽에 그려진 그림이, 그린 목적 그리고 무엇을 그렸냐에 따라 완전하게 다른 느낌을 줄 수 있다는 것에 새삼 놀랐습니다. (그리고 벽화가 가지는 매력에 환호했습니다. )


짝꿍이다 싶은 것을 연결해 보아요~

A 상품을 알리고 기업의 이미지를 높이는 광고. 
B 혁명이라는 목적의 실현도구로서 왠지 크고 무겁고 비장한 느낌의 그림. 
C 넘치는 재치와 유머로 사회의 모습을 표현한 키스헤링의 낙서화. 


1 둥둥 떠다니는 돈다발
2 한사람이 손 끝으로 가리킨 한 방향을 거대한 집단이 한맘한뜻 으로 간절하게 바라보는 모습 
3 놀이 동산을 뛰어다니는 절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어린이들 무리



구체적인 묘사 대상이 없이 선과 면과 색으로 이루어진 그림을 보면, 참으로 난감해 집니다. 대체, 작가는 뭘 말하고 싶은 거야? 해석이 참으로 어렵죠. 현실의 묘사와 대상의 재현을 포기하고 지극히 관념화 된 그림이 과연 그림을 감상하는 이들과 교감할 수 있을까요? 키스헤링도 아마, 이런 질문에서 시작하지 않았을까 예상합니다. 그래서, 관객들과 소통하지도 못하면서 예술가임네 하며 소위 잘난 체하는 사람들에게 보란듯이, 지하철역 왔다갔다하는 사람들 앞에서 '함께' 그림을 그린 것이죠. 


사진 : 키스헤링 재단 http://www.haring.com



키스 헤링은 팝아트 장르의 화가로 분류되죠. 하지만 대표적인 낙서화가인 바스키아와 키스헤링은 조금 다른 느낌입니다. 바스키아의 그림에서 절망과 분憤 섞인 냉소가 느껴 진다면, 키스헤링은 여유롭고 유머러스합니다. 무질서보다는 질서가 느껴지고 즉흥적이라기 보다는 철저하게 디자인된 느낌이 나지요. 그가 인종차별을 주제로 그림을 그려도, 동성애를 묘사하는 그림을 그려도, 전쟁을 반대하는 그림을 그려도 그 작품들이 무겁거나 심각하거나 엄숙하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보는 사람들을 덜 불편하게 하지요. 그 역시 성소수자였고, 에이즈로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지만.... 그래도 그의 그림에는 유머가 넘쳐납니다. 
그래서 무척 마음에 듭니다. 



저 자유자재로 꺾여 있는  관절들을 보세요. 단순화된 인체들이 마치 춤을 추고 있는 것 같지요? 저런 모양의 쿠키가 나오면 완전 귀여워서 절대 먹을 수 없을 것 같아요~!!

키스헤링은 이렇게 귀여운 아이콘을 이용해서 당시 미국사회의 대중문화와 사회의 모습을 표현했습니다. 
기존의 관습에서 벗어난 즐거운 '놀이' 였죠. 당시의 그래피티는 시대의 욕망을 분출하는 일종의 코드로 기능했던 것 같습니다. 70~80년대 뉴욕거리의 낙서란 경제적으로 힘들고, 사회적으로 소외받던 유색인종 아이들이, 질풍노도의 그 시기에! 공공장소의 벽에 스프레이를 뿌리는 일종의 일탈행위였으니까요. 키스헤링은 백인이었고, 십대도 아니었습니다. 쉽게 생각해서, 낙서랑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었죠. 아마도 그는 낙서를, 십대의 아이들처럼, 주체할 수 없는 욕망을 분출시키는 수단이 아니라, 절제된 감정을 표현하여 대중과 소통하는 유용한 수단으로 여긴 것 같아요. 새로운 미술적 표현 수단으로 '미술관 전시'가 아니라 낙서라는 방식을 이용한 것이죠. 분명 미술의 오래된 관습에서 벗어나 새로움을 추구한 의미 있는 시도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그의 작품들이 전세계에 알려지고 머그잔과 티셔츠의 문양으로 쓰이게 된 계기는, 그의 낙서들이 지하철 벽이 아니라 '미술관과 갤러리'로 기어들어가 전시 되었기 때문이죠. 쩝! (물론 키스헤링은 유명해진 후에 틀에 박힌 대중과의 소통방식에서 벗어나고자 '팝 샵 Pop Shop'을 만들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쉽고 재미있게 다가설 수 있는 결코 어렵지않은 '미술관밖 미술'이라고나 할까요?)

혹자는 키스헤링의 아이콘들이 상품화되어 대량으로 거리에서 유통되는 것을 곱지 않는 시선으로 보기도 합니다. 전 오히려 질문하고 싶습니다. 왜 그러면 안되죠? 예술작품은 특정한 장소에서만 대중과 만나야 합니까? 
물론, 작품속 일부 이미지나 아이콘만 차용되 아무런 메세지 없이 배열/배치 되어 있는 상품이 과연 예술 작품인가라는 의문이 들긴 하지만, 그의 그림이 그려진 머그잔을 사용하고 티셔츠를 입으며 거창한 무언가를 기대하는 건 아니잖아요! 뿌우~~


여하튼 저는 그가 어렵지 않게 대중과 소통하려고 했던 그 시도들이 무척 마음에 듭니다. 그리고 그가 가진 여유로움과 유머러스함이 참 부러워요. 
제가 사는 동네의 담벼락에서도 그를 만날 수 있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회색 시멘트가 발라진 삭막한 벽에 키스헤링의 그림같은 유머러스한 낙서화로 가득차 있으면, 그 앞을 걸어다니면서 흐뭇하게 웃을 수 있을 것 같아요. 


- 웨스트 빌리지 Tony Dapolito 레크레이션 센터의 수영장에 그려진 키스 헤링의 벽화 -


(나중에 기회가 되면, 벽화-공공미술에 대해서 좀 공부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웹 상에는 영화를 보고 난 후 책을 읽고 난 후 노래를 듣고 난 후의 감상들이 넘쳐납니다. 저만해도, 책이나 영화를 보고 난 후 뭔가 끄적이는 것이 낯설거나 힘들지 않아요. (단지 게을러서 안하고 있을 뿐 ㅋㅋ)  책 전문가나 영화 평론가가 음악 전문가가 아니어도. 우리는 누구나 영화나 책과 노래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하고 있고, 그것을 그렇게 어색해 하지 않습니다.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 새삼스럽게 그 의미를 찾아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모두 영화 책 같은 매체가 매우 혁명적이고, 대단히 많은 사람들의 삶을 풍부하게 했다는 것을 체험적으로 알고 있지요. 영화와 책, 음악은 본 작품에 사람들의 평가와 감상이 어우러져 더욱 풍성한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런데, 미술작품들은?
왜 미술 작품에 대한 대중적인 평은 넘쳐나지 않을까요? 
물론 미술작품들이 물론 영화나 책보다는 접근성이 떨어지기는 합니다. 영화나 책 만큼 많은 사람들이 한 작품을 동시에 감상할 기회를 가지지 못해요. 오리지널 작품은 하나이고, 영화필름이나 책처럼 복제가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엔 이보다 더 큰 원인이 있는것 같습니다. 그것은 바로, 미술작품을 평하는 것 자체를 두려워 하기 때문인것 같아요. 다시말해 미술작품 평에는 뭔가 그럴듯한 배경 지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보통의 평범한 지적 수준을 보유하고 있는 우리들은 '감히' 미술작품을 평할 수 없다라고 여겨버리는 겁니다.
참 웃기죠? 사람들이 단 한명도 보지 않는 작품에, 어떤 가치를 부여할 수 있겠습니까. 결국 미술 작품들도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고, 그렇다면 그것을 보고 사람들이 와글와글 떠들고 평하고 즐기고 해야하는데, 단지 쫄아서 그러지 못하고 있다니요. ㅎㅎㅎ

그래서, 저 시도합니다. 

개봉박두! [미술관 & 츄리닝 입은 여자]

[미술관 & 츄리닝 입은 여자]는 미적 감각이라곤 옷 중에 딱 '츄리닝' 정도인 제가, 미술 작품들을 보고 든 느낌을 남눈치 안보고 대담하게 끄적이는 공간입니다. 

[미술관 & 츄리닝 입은 여자]의 느낌을 사진으로 표현하자면,
딱 이런 느낌?

우선은 소위 명화라 불리우는 거장의 유명한 그림들부터 시작하려고해요.
그들의 권위에 묻어가겠다는 얕은 꾀죠. ㅋㅋ  생계를 위한 일 때문에, 요 몇달 유명 작가들의 명화집을 보고 있는데, 그때 그때 드는 잡스러운 느낌들을 그냥 흘려보내기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좀 창피하더라도 용감하게끄적이는 겁니다. 그리고 다음에 그 어렵다는, 대체 어떤 의미인지 참으로 파악하기 힘든, 감상한 열이면 열 다 다른 이야기를 하는, 최신의 미술작품들에 도전하는 겁니다.

일단, 결심은 비장합니다.
얼만큼의 지속력을 가지고 꾸준하게 써 나갈지.... 뭐 지금 시점에서 장담 못합니다만, 여하튼 지금 이순간은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화르륵~

포스팅 날짜는 매주 주말 입니다.  필 받은 주는 수요일도 올라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