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천'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06.21 조카랑 산책하기
  2. 2009.07.14 홍수와 피난에 대한 기억

조카랑 산책하기

조카는무조건예쁘다 2010.06.21 11:40 posted by 차완무시


오래간만에 우리 집에 와서 방과 거실 사이를 쉴새 없이 왔다갔다하던 조카.
집에 좁게 느껴진다. 밖에 나가서 놀자고 꼬드겨볼까?

"조에야, 밖에 놀이터 새로 만들고 있던데, 우리 거기 구경갈까?"
"놀이터 다 만들었어?"
"아니 아직 다 만들진 않았는데, 언제 다 만들어지나 조에가 검사하러 가는 거야. 어때?"
"좋아, 가자!"

옷 챙겨입고 현관 앞.
조카는 이제 신발도 혼자 잘 신는다.
아차차. 또 좌우를 바꿔 신었네!
신발 좌우 구분은 아직 어렵나 보다. 
그냥 두려다가 넘어질까 걱정돼서 신발을 바로 신도록 부탁했다.

엘리베이터 안, 이전 호들갑 떨지 않고 의젓하게 1층 버튼을 잘도 누른다.

한창 리모델링 마무리 중인 동네 놀이터에는 벌써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플라스틱 그네 비닐을 스스로 벗겨내고 신나게 타는 녀석들,
미끄럼틀과 정글짐의 혼합인 듯한 일체형 야자수 놀이기구에 올라가 안전도를 미리 테스트 하는 녀석들,
작은 말, 시소, 몇몇의 탈 것 주변에 삼삼 오오 붙어 있는 꼬맹이들,
주중의 생기 없는 놀이터와는 달리 아이들이 뛰어 노는 주말의 놀이터는 생기 넘친다.

조카도 호기롭게 경사가 좀 있는 미끄럼틀 위에 올랐다.
앉아 내려오려고 폼 잡았는데 아래를 보니 좀 무서웠나 보다.
잠시 딴짓을 한다.
"이모가 아래에서 잡아 줄 테니, 신나게 내려와~!"
큰 결심한듯, 나와 눈을 몇 번 마주친 다음 눈을 질끈 감고 슝~ 내려 온다.

"아이쿠!"
꽤 묵직하다.
"또 탈까?"
도리도리. 미끄럼틀의 스릴에 마음이 살짝 마음이 놀랐는지 조카는 놀이터를 벗어나고자 했다. 겁 참 많다.

그냥 들어가긴 좀 아쉽고 해서, 조카랑 안양천 뚝 윗길을 살살 산책하기로 했다.
4살난 우리 조카는 나이에 비해 제법 잘 걷는 편이다.
계단도 혼자 잘 오르내리고, 
전에는 뛰면 십중팔구는 넘어졌는데 이제는 잘 넘어지지 않는다.
아직 안정감 있는 자세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내 주변에서 5미터 10미터 정도 떨어져 있어도 크게 불안하지 않은 정도가 되었다.
이젠 함께 산책하는 것도 문제 없다.

안양천 뚝 길 위엔 때늦은 민들레 꽃  한두 개가 활짝 피어 있었다.
조카는 쪼르르 달려가 그 앞에 앉아선 알은채를 한다.
"막내 이모, 이건 해바라기야. 노란 꽃 털 알래에 해바라기 씨가 있어. 해바라기 씨는 맛있어!"

어라, 이녀석 허위사실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마구 유포한다.

'이게 어떻게 해바라기냐? 민들레지!' 라고 면박을 주려다가,
"그래? 우리 조에 해바라기 씨 좋아하는구나. 그런데 이모는 여지껏 이 꽃이 민들레인줄 알았어. (홀씨를 하나 빼서)이 거봐. 해바라기 씨앗보다 엄청 작은 씨가 달렸지? 어쩌며 해바라기가 아닐지도 몰라. 우리 있다가 집에가서 책 찾아보자!"라고 했다.
"꾸래!"
대답이 우렁차다.

뚝 윗길을 따라 다시 걸었다.
조에는 콧노래도 부르고, 이유없이 다다다 뛰다가 다시 걷기도 하고. 꺄르르 웃기도 한다.
그러다가 좀 심심했는지 아래로 내려가자 한다.
뚝 아래는 이름모를 여러 풀들이 조카의 키를 훌쩍 넘겨 내 키와 버금갈 정도로 쭉쭉 뻗어 자랐다.
비온 다음날이라 곳곳에 작은 웅덩이가 있고,
자전거 도로 위로 자전거들이 씽씽 달린다.

'개골, 개골'
깜짝 놀란 조카.
"이모 이게 뭐야?"
"개구리 소리야. 조에도 이 노래 알지? 개굴개굴 개구리 노래를 한다~. 노래하는 중이야. 저기 풀속에 개구리가 잔뜩 있어!"
"아~ 그렇구나."

좀더 강쪽으로 가자, 개구리 우는 소리는 더욱 커졌다.
'개골개골개골개골개골개골꾸엑꾸엑꾸엑꾸엑꾸엑'

"아 시끄러워! 개구리야, 조용히 해!"
자뭇 진지한 얼굴로 풀숲을 향해 삿대질까지 해가며 훈계를 해 보지만,
그런다고 개구리가 조카 말을 들어줄리 없다.
아랑곳않고 계속 우는 개구리떼.
결국 소음에 시달리던 조카는.
"이모, 할머니 집에 가자!"
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손을 잡고 팔을 흔들며 돌아오는데, 조카가 계속 노래를 한다.

"꾸엑꾸엑 개구리 노래를 한다."
"개골개골 개구리인데?"
"아니야, 꾸엑꾸엑이야."

그래, 맞다.
개구리는 안양천 개구리들은 개골개골 보다는 꾸엑꾸엑에 더 가까운 소리를 내며 운다. 
한마리는 개골개골일지 모르지만 여러 마리가 무리지어 우는 소리는 영낙없이 '꾸엑꾸엑'이다.
조카의 편견 없는귀가 사랑스럽다.
(안양천 개구리 소리를 들을 수 있는 포스팅 http://blog.naver.com/warong25?Redirect=Log&logNo=105883626)


생명을 '글'로 배우는 건 안타깝다. 
책으로 식물이나 동물을 익힌 아이들은
활자와 그림으로 표현된 소리와 느낌 이상을 알기 어렵다.
그렇다면 생명을 사랑하기도, 자기를 생명의 한 부분으로 인식하고 함께 조화롭게 살아가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이 살아있는 생명을 직접 보고 만지고 함께 놀 수 있도록,
도시의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를 벗어나 맨발로 뛰어 놀게 하자.
산책을 하며 새삼 다시 느꼈지만, 아이들에게 최고의 놀이터는 산과 강과 들, 바다이다.

 

홍수와 피난에 대한 기억

雜想 2009.07.14 21:31 posted by 차완무시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안양천 하류근처에서 빙빙 맴돌며 살고 있다.
하천이 있어 좋은 점은 무척 많지만, 여름엔 좀 불안할 때가 많다.
한강이 범람하는 건 좀처럼 자주 있는 일이 아니지만,
지천인 안양천이 범람하는 건 종종 있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날엔 비가 좀 과하게 온다 싶으면 종일 안양천의 수위 곁눈질 하며 불안하게 하루를 보냈다.

지금이야, 양천구청과 영등포구청이 매년 치수사업에 많은 돈을 들여 이런 저런 정비를 해서 나 어릴 때처럼 상습적인 안양천의 범람과 동네 침수가 벌어지진 않는다.
그래도 어릴 때 경험했던 홍수의 기억은 강렬해서, 비가 이렇게 겁나게 내리면, 가슴이 쿵쾅 거리긴 한다.

제일 강렬하게 남아 있는 기억은 7살 때 처음 ‘피난’이란 걸 경험했던 '대홍수 사건'이다.
어릴 때 우리 집은
어린이가 걸어 올라가기엔 꽤나 높은 계단을 5개나 올라가야 하는 높이에 있었다.
지금으로 치면 보통 아파트 1층보다 조금 더 높았다.

예나 지금이나 여름 장마철엔 비가 많이 왔다.
어느 날, 잠을 자고 있는데, 등이 축축했다.
일어나니 방바닥에 물이 찰방찰방하게 고여 있고, 아빠와 언니들이 분주하게 오가고 있었다.
"이게 뭔 일이래?"
밤사이 안양천이 범람해 동네 1층 집들이 다 침수되어 버렸다.
어떤 곳은 어른들 키를 넘길 정도로 물이 찼다.
내 바로 위 언니가 말했다.
"우리 자는 사이에 홍수 났어. 우리 피난가야 해. "
피난? 그게 뭔지 알 턱이 없는 나이였다.
그냥 방에 물이 고여 있다는 사실에 무척 기분 나빴으나,
한편으로 다들 함께 어딘가로 가려고 준비하는 걸 보니 신이 났다.
그 와중에도 비는 계속 내렸고 물은 조금씩 차 오르고 있었다.

동생은 너무 어려서, 엄마와 윗층 집에서 신세를 지며 머물기로 했고,
난 아빠와 언니들, 동네 사람들과 함께 근처의 학교로 피난을 갔다.

동생의 작은 욕조는 나와 내 또래 아이들 둘을 태운 배가 되었다.
아빠와 동네 청년들은 우리를 태운 배를 뒤에서 밀며 1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던 신축 초등학교로 갔다. 피난을 간 그 초등학교(신목초등학교)주변은 고층 아파트를 지어 올리기 위해서 동네 야트막한 언덕을 다 깎아 놓은 상태였는데, 그 사이로 어느새 큰 강이 하나 생겨버렸다. 빗물과 범람한 물이 하루 밤사이 만들어낸 길이었다. 시뻘건 황토물이 거대하게 소용돌이치면서 흘러가던 그 광경을, 난 지금도 있을 수가 없다.
'물은 무서운 거'라는 사실을 그 때 처음 시각적으로  느꼈다.
아빠와 동네 아저씨들은 혹여 그 급류에 휩쓸릴까,
위쪽으로 조심조심 욕조 배를 밀며 나와 아이들을 학교 운동장으로 구령대까지 인도해주었다.

3층부터 교실마다 동네 사람들로 꽉꽉 차 있었다.
책걸상을 복도로 다 빼내고, 돗자리와 모포 등을 깔고 엄마는 아이를 안고, 옹기종기.

난, 사실 좀 신났다. 밖에는 장대비가 내렸지만, 이렇게 큰 학교가 떠내려갈리는 없잖은가!
"피난이 이런 거라면 몇 번이고 오겠어!"
지난 해 같이 유치원을 다녔던 친구들, 동네 친구들과 신나게 복도를 뛰어 다녔다.
큰 언니였나? '집이 물에 잠겼는데 넌 뭐가 좋느냐'며 핀잔을 주었지만,
그런 무거운 주제 따위는 알 턱이 없는 원숭이 같은 나이.
게다가 내 집이 잠겼나? 엄마 아빠 집이 잠겼지.

여하튼 나는 평소에 엄마가 잘 만들어주지 않던 라면을 마음껏 먹을 수 있고,
동네 친구들과 밤늦게 까지 복도를 돌아다니며 귀신놀이를 할 수 있는
'대피'라는 게 무척 신났다.
무엇보다, ‘학교’라는 곳에 있다는 것이 너무너무너무 좋았다.
언니들이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일제히 학교에 갈 때,
혼자 남겨지는 슬픔이란 무척이나 견디기 힘든 것이다.
몇 번이나 언니들을 따라가겠다고 말했던가! 얼마나 초등학교를 동경했던가!
울컥 올라오는 울음을 참으며 간신히 '몇 밤 자면 나도 학교갈 수 있느냐'고 물었는데,
엄마가 ‘아직 멀었다’라고 대답한 순간, 얼마나 서러웠던가!
그런 오매불망 초등학교에서 밤새도록 신나게 뛰어 놀고 있으니!
피난이 아니라 캠핑 같았던 게지.

물론 물에 잠긴 집은 난리가 났다.
가전제품과 가구는 다 못 쓰게 되었고.
진열장 아래 두었던 나와 언니들의 어릴 때 앨범과 사진은 망가졌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어릴 때 사진이 몇 장 없다.)
아버지는 출근도 며칠간 못 했고,
장판과 도배도 다 다시 해야 해서
물이 빠지고 난 후에도 우리 가족은 친척 집 신세를 졌다.

참, 암울했을 텐데,
나는 그 때를 무척 즐겁게 추억하고 있다.
누구나 옛 기억에 가하는 뽀샵질을 어느 정도 감안하더라도, 홍수가 나서 피난 갔던 그때를 너무 즐겁게 추억하고 있는 거 같다. 아마 홍수의 고통을 직접적으로 감당해야 할 책임이 없었으니까 가능한 거겠지.
분명 우리 엄마 아빠는 진짜 서럽고 힘들었을 텐데...
그 많은 아이들과 피난을.... 아! 난 할 수 없어!

물로 나도
지금 우리 집이 침수 된다면,
20년이 지난 후라도
절대 즐겁게 기억할 수 없을 거다.

뭔소리야.


여하튼 아... 비가 그칠줄을 모르는데,
이번 비에 피해 입는 사람들이
더 이상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