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1년-그때 청계천에서 만난 P군 에게.

雜想 2009.05.03 23:39 posted by 차완무시



어제 통화하면서도 이야기 했지만, 우리가 서로를 각별하게 의식하기 시작한 지 1년이 되었어.
그 말은 청계광장에서 촛불이 시작된 지 일 년 되었다는 말이지.
언론사마다 촛불 1주년 특집 기사를 내고 있다.
사실, 작년에 수십 수백만의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외쳤던 것들 중에 눈앞에 실현 된 것은 아무것도 없어.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는 수입되고 있고, MB식 미친 교육은 최근 두 달 새 청소년 8명을 자살로 몰아넣었으며, 언론은 통제되고, 소통은 더 어려워졌지. 그걸 보면서 실망에 빠져 더 무기력해진 이도 있고, 악에 받쳐 지금까지 매일 촛불을 드는 이도 있다. 그리고 때를 기다리는 이도 있어.
하지만 좀처럼, 작년처럼 응집하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해도 바뀌는 게 없다는 것을 경험한 이들의 마음속에 새겨진 ‘체념’은, 독한 것이거든. 쉽게 안 떨어진다.

왜 안 모이냐고 야속해하기만 하면 안 될 말이겠지.
분명 저항의 구체적인 행동을 멈춰선 안 되겠지만, 맹목 하다가 진지한 성찰의 기회를 놓치면 그것도 곤란하지.
수백만이 밝혔던 촛불이 무기력해진 이유를 무조건 MB 탓으로 돌리면
우리 맘은 편하기야 하겠지만, 결국 삶은 변하지 않거든. (아, 움직이기는 하는 구나, 뒤 쪽으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작년엔 이랬는데’가 아니라 ‘지금 이렇게 하면 어떨까’인 것 같아.
그런 제안은 작년 촛불에 대한 면밀한 평가에서 나올 수 있다고 봐.
피하면 안 되는데, 사람들이 자꾸 핑계를 만들어서 그 뒤에 숨는 거 같아 씁쓸하다.


벌써 ‘아름다운 추억’으로 회상하려는 부류도 있다.
책상에서 펜대 굴리는 사람들 중에 그런 이가 있더구나.
하지만 올해 4월 30일부터 메이데이, 5월 2일까지,
거리는 전쟁터였다. 수십 명이 다치고, 수백 명이 끌려갔다.
싸우는 사람들에게는, ‘촛불 1년’을 감상적으로 회상하는 것은 사치야.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싸움이지.

우리 싸움을 계속 하자.
변한 게 없으니 더 힘내서 바꿔야지.










2008년 새로운 '폭력시위용품'으로 유모차가 떠올랐네요.
어처구니가 없어서 입이 떡 벌어집니다. 좀처럼 다물어 지지가 않아요.
코메디도 이런 코메디가 없습니다.

관련기사 프레시안 : "엄마 협박하고 비아냥 대는 게 경찰 임무냐"


경찰들의 수첩에 아마 이런 항목이 추가 되지 않았을까요?

유모차 : 아이를 태우고 와서 경찰의 진압 진로를 방해하는 무시무시한 위력을 발휘함. 쇠파이프 화염병과 함께 특별 엄중 처벌해야 할 요주의 폭력 시위용품. 쌍둥이용일 경우 가중처벌.


대체 어청수는 어떤 사고의 과정 끝이 저런 어처구니 없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요?
15초 동안 골똘하게 생각해 봤는데, 딱 이거겠구나 싶더이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유모차 부대를 처벌해야 겠다고 생각한 청수의 사고 흐름


 유모차 부대 큰 반향 일으키며, 촛불 시위의 스타로 떠올랐음. 나보다 더 인기가 있었음. 무척 질투남.
 ↓
 다른 집회에서 그들이 또 나오면 어쩌나 살짝 걱정되기 시작함. '아아아~ 시져시져. 내가 일등 먹을꺼얌'
 ↓
 겁을 줘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이유를 골똘하게 생각함
 ↓
 유레카! '공권력을 무력하게 했으니 이는 공무집행방해! 고로 유모차는 폭력시위용품!
이라고 몰아가야지~'
 ↓
 무시무시한 유모차를 끌고온 유모차 부대는
조직적이고 훈련된 최정예 전문 폭력시위꾼으로 다 구속시켜야 한다고
좃선일보한테 한방 터트려 달라고 부탁함
 ↓
 '쇼핑센터 같은 곳에 위험한 시위 용품인 유모차 끌로 나오는 사람들도 다 구속시켜야 하나?'
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머리가 콕콕 아파오기 때문에 그냥 잊기로함.
복잡한건 생각하기 시져~
 ↓
 네티즌이 뭐라해도, 야당들이 뭐라해도 mb횽아가 날 지켜줄꺼야라고 생각하고 빙그레~ 웃음

덧붙여 : 아이의 목숨을 담보삼는 천인공노할 행동을 한 유모차 부대는 언젠가 하늘이 벌할 것임. 그분의 수고를 덜어드리기 위해서라도 내가 벌해야 함. 할렐루야~



청수의 머릿속 딱 이정도 일 것 같다는....
에휴...



1. 나의 요즘

고백한다.
요즘 나는 참 왕재수다.
어느 순간 부터
뭔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을 만나거나,
실천을 통해 무언가를 바꾸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겉으로 표현하지 않더라도 속으론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해?'라고 비웃기부터 한다.
지독한 냉소다.



2. 전에는 나도...

나도 냉소를 경멸했다.

이전에 나는 냉소를 이렇게 생각했다.

more..


지독한 게으름이자, 책임 회피다.

그런데, '협박성 이분법'이 난무하는 세상에 몸을 푹 담그고 살다보니
냉소가 나의 뇌와 몸에 어느덧 침투해 버렸다.


3. 냉소를 부르는 '협박성 이분법' - 이렇게 나를 공격했다.

'협박성 이분법'은 냉소가 자라게 되는 자양분이다.
냉소가 뇌와 몸에 스며들면, 손발이 오그라들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다. 대세에 몸을 맡기고, '바담 풍'하게 된다.
감이 잘 안오나? 우리가 흔하게 접하게 되는 생생한 '협박성 이분법'의 예를 들어보자.


=> 우리로 하여금 촛불과 함께 뜨거운 봄/여름을 살게한 MB는 이렇게 주장한다.
"미국산 쇠고기수입 안하면 (미국과의 관계가 엉망이되서) 경제가 어려워진다. 너 경제 망하는 꼴 보고 싶냐? 선택해! 경제를 망하게 할래? 쇠고기 수입할래?"
1)경제가 어려워지는 것은 나쁜일이다, 2)위험한 쇠고기를 수입하는 것도 나쁘다.
명박이 생각엔 2)보다 1)이 더 나쁜 것이기 때문에, 1)를 피하기위해 2)를 택하자는 것이다. 


=> 한미FTA를 꼭 해야 한다며, 사이비 종교처럼 몰두했던 노무현의 주장은 이런식이었다.
"너 (북한처럼) 가난하게 고립되어 살래? 아니면 신자유주의 세계 질서로 우리가 먼저 주도해서 뛰어들어갈래? "
그는 여러차례의 대국민담화를 통해, 한미FTA를 반대하며 신자유주의 질서로의 적극적 편입을 거부한 사람들이 마치 '우리 가난하게 고립되어 살자'고 주장하는 것처럼 몰아갔다.


=> 나를 자식 중 유일한 골치꺼리라 말씀하시는 엄마의 말에는 이런 뉘앙스가 숨어 있다.
"자본주의적인 삶의 방식(경쟁을 통한 우수한 스펙-학벌/자격증/외모 습득)대로 살래, 아니면 무능한 실업자(낙오자)가 될래."
SKY에 가지 않고, 취업 잘되는 전공을 택하지 않고, 자격증에 심드렁하고, 외모를 잘 가꾸지 않으며, 돈잘버는 직업을 택하지 않은 나는 엄마가 보기엔 낙오자 인거다. 

이 교묘하게 제시된 선택지.
마치 우리가 택할 수 있는 것은 무조건! 언제나! 제시된 둘 중 하나 인 것 처럼 몰아가는 화술... 다른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는 정보는 절대 제공하지 않는다.
그리고 차악의 선택지와 함께 제시 되는 것은 늘 '파국', '루저', '가난', '죽음' 등 꼭 피하고만 싶은 것, 즉 공포감을 조성하는 것들이다.
이 '협박성 이분법'에 우리는 푹 쩔어 살고 있다. 그리고 '차악'의 선택을 당연하게 받아드린다.
'최악은 안되니까 차악을 택해라' 라니!!!! 지독한 협박이다.
(이런 논리를 거부하겠다고 이리뛰고 저리뛰며 살아 왔다고 생각했었는데, 여러차례 실패와 실망을 거듭하게 되면서... 그리도 더욱 강력하고 교묘해지는 '협박성 이분법'의 공격 앞에, 가랑비에 옷 젖듯 나.... 슬슬 넘어가버린거 같다.)


4. 극복의 실마리 - 희망의 증거

나.. 냉소에서 벗어나고 싶다.  극복 할 수 있을까?

=> 희망의 증거
"미친소 너나먹어"

"경제를 망하게 할래? 미국산 쇠고기 수입할래?" 라고 협박한 이명박에게 던진, 중고생들의 '전복적인' 대답이었다. 어른들이 '국가경제'라는 그 엄숙하고 권위로운 단어 앞에서 쫄아, 둘 중 하나를 택하라는 MB의 프레임 안에서만 골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고 있을때, 중고생들은 틀을 가볍게 뛰어넘어 유머러스하게 회심의 일격을 날렸다. 그리고... MB의 프레임에 커다란 금이 갔다.


명심하자.
꼭 양자택일의 선택지만 있는 것이 아니다. 3안 4안이 있을 수 있다.
꼭 최악과 차악의 선택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최선 또는 차선의 선택지가 있을 수 있다.
세상이 어떻게 '모'아니면 '도'인가! '개' '걸' '윷'도 분명 있다!

지긋지긋한 '협박성 이분법'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안엄숙하고, 유머러스하고, 전복적인 사고를 하자.
나의 작은 실천이 공포에 찬 현실에 균열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살자!